이곳은 개발을 위한 베타 사이트 입니다.기여내역은 언제든 초기화될 수 있으며, 예기치 못한 오류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이괄의 난 (문단 편집) === 황주 전투 === 1624년 2월, 평양 남쪽의 요충지인 황주를 우회하여 진군하던 이괄 군은 황주와 봉산 사이의 산산(蒜山)에서 관군에게 덜미를 잡힌다. 장만이 이끄는 관군의 본대는 중화로 나아가 이괄 군을 쫒는 한편, 황해 감사 임서(林㥠)로 하여금 황해도의 병사들로 황주 동쪽에 위치한 상원과 수안을 지키도록 하였다. 황주 남쪽의 봉산에도 관군이 집결하여 이괄 군을 막을 준비를 하니, 이괄 군은 북, 동, 남 삼면으로 포위되는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나 이괄은 봉산으로 넘어가는 길목이 관군에 의해 차단되자, 남쪽으로 이동하던 군을 되돌려 지나쳤던 황주로 되돌아가서 포위망을 살짝 흔들어본다. 뜻밖의 움직임에 당황한 장만은 선봉이었던 정충신에게 남이흥을 비롯한 지원군을 보내 맞서게 하였다. 하지만 정충신 군은 기동 병력에 약간의 지원군만 받고 이괄 군을 상대해야했으므로, 장만의 포위망은 단순히 관군의 병력만 여러 갈래로 분산시킨 채 정작 전투 부대에는 큰 지원을 못해주는 묘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마침내 2월 2일, 황주 신교(薪橋)에서 이괄 군과 관군은 처음으로 회전(會戰)을 벌이게 된다. 정충신, 남이흥의 관군은 급작스러운 작전 변경으로 휘하 병력만 이끌고 왔기에 규모가 크지 않았다. 직접적으로 기록된 정충신의 병력은 2천여 명 이하이며, 다른 장수들도 포함한 것이기에 추가 병력도 확실치 않다. 최대로는 8,000명을 초과한 이상을 기록하는 경우도 있는데, 당시 북방 병력들의 분포를 보면 굉장히 미심쩍은 수준이다. 그런데, 교전이 시작될 무렵 이괄의 병력이 대규모로 관군에게 투항하는 사태가 벌어진다. 실록에 따르면 교전 중 정충신과 남이흥이 반군을 향해 "올바른 이치"에 대해 크게 소리치자 반군 1천여 명이 순식간에 흩어지고, 이괄 군의 선봉이었던 허전, 송립 등이 관군으로 투항해 왔다고 한다.[* 거짓으로 투항하는 척 해서 적진을 혼란케 하려는 이괄의 계략이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당시 투항한 송립은 훗날 병자호란 때 왕을 보호해 남한산성으로 피난시켰다는 기록이 있을 뿐 아니라 정2품 관직인 지중추부사에 이르렀기 때문에 단순한 거짓 투항으로 보기 어렵다. 사후엔 장정(壯靖) 이라는 시호까지 받는 것으로 미루어 볼 때, 오히려 이괄 군에 거짓으로 동참했다가 기회를 엿봐서 휘하 병사들을 이끌어 투항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흩어진 병사 1천여 명도 대부분 토벌군에게 귀순했으나, 관군이 투항병들로 어수선해져 진형이 무너지자 이괄은 과감하게 [[항왜]]들을 앞세워 기습하여 관군을 패퇴시킨다.[* 투항병들을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이라 착각한 관군이 스스로 와해되었다는 기록도 있다.] 관군은 완전히 와해되고 여러 장수들이 사망하거나 이괄군에게 생포되었지만, [[연려실기술]]에 따르면 관군의 피해는 전사 30 여명, 포로 30여명에 그쳤다. 실제로 정충신은 황주 전투 이후에도 이전과 다름 없이 계속해서 이괄을 추격했기 때문에, 정말로 피해 자체는 적었다고 볼 수 있다.[* 정충신의 부대는 패배를 겪었다고는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이괄을 꾸준히 추격한다. 마지막 날짜 기록을 보더라도, 이괄은 한양을 점령한 바로 다음날, 정충신이 밤중에 만들어놓은 진영에 싸움을 걸었다가 패배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정충신의 병사들이 황주에서 큰 피해를 입었다면 절대로 나올 수 없는 기록이다.] 즉, 애초부터 관군 장수들이 적은 병력으로 싸움을 걸었고, 첫 번째 해프닝만으로도 병사들이 붕괴되어버리고, 장수들만이 계속 싸우려고 하다가 큰 피해를 입었다는 기록 자체는 아귀에 맞는다. 즉, 당시 관군 측에서는 지휘관들을 제외한 병사들은 싸움없이 흩어질 정도로 병사들의 상태가 좋지 않았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 [[피로스의 승리| 전투는 승리했을지언정 1천이 넘는 병사가 관군에 투항한]] 이괄 군의 어처구니 없을 정도로 낮은 결속력과 명분[* 병사들은 유닛이나 기계가 아니다. 이괄의 병사들이 국가의 이치에 대해 논하자 줄줄이 탈주하고 마지막 패배조차 이런 언급이 있는걸 볼 때 국가의 명분을 빼놓고 말할 수가 없다.]을 확인할 수 있는 전투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